| 많은 의미를 함축한 심오한 블랙. 레이스처럼 섬세한 화이트. 그리고 폭풍우가 지나간 하늘을 닮은 환한 그레이.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에게는 눈빛에 담긴 감정, 고통의 침묵, 저항의 외침을 전하는 데 그 어떤 다른 컬러도 필요하지 않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페미니스트로서, 가장 위대한 현대 사진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녀는 지난 50년간 끊임없이 선조들의 공동체와 여성들, 소외계층의 나약한 존재감을 기록해 왔다. “평범함 속의 놀라움”을 찾기 위해 방랑하는 삶을 산 그녀는 쿠바와 동독, 그리고 무엇보다 고향인 멕시코를 무대로 내밀한 순간과 전통, 얼굴과 그림자, 주름과 제례 의식을 포착했다.
1942년 멕시코, 부유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낳았다. 27살이 되던 해, 그녀는 멕시코 영화 대학에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멕시코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누엘 알바레스 브라보(Manuel Álvarez Bravo)를 만났다. 그녀는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영화감독이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딸 클라우디아(Claudia)가 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딸을 잃은 고통은 그녀가 보다 고독하고 성찰적인 작업을 하도록 이끌었다. 죽음이라는 주제에 5년 동안 매달린 그녀는 ‘안젤리토(angelito, 어린 천사)’라고 불리며 민간 신앙에 의하면 “곧장 천국으로 간다”고 여겨지는, 너무 이른 나이에 사망한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는 정체성, 자아 탐구 또는 인간이 놓여 있는 상황에 관한 고찰을 이끌어내는 한층 내면적인 사진 스타일을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그녀만의 감성 어린 시선은 멕시코 북부 소노라(Sonora) 사막을 떠도는 500명의 토착민으로 이루어진 세리(Seri)족을 향했다. 그들의 문화에 더 깊이 빠져들기 위하여, 그녀는 몇 주 동안 미국 국경을 따라 그들과 함께 유목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79년, 멕시코 화가 프란시스코 톨레도(Francisco Toledo)는 자신이 거주하는 오악사카(Oaxaca) 지역에서 특히 여성들의 영향력이 우세한 마을인 후치탄(Juchitán)의 사포텍(Zapotec)족을 그라시엘라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것을 일종의 계시로 여긴 그녀는 상상의 나래를 새롭게 펼쳐냈다. 그녀의 카메라 앞에 선 그곳의 여성들은 성스러울 정도로 강인하고 당당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살아 있는 여러 마리의 이구아나를 머리에 얹고 위엄 있는 눈빛을 지닌 한 여성을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그려낸 그녀의 유명한 사진, «이구아나 성모 마리아 Nuestra Señora de las iguanas»에서 여실히 표현되었다. 그후 10년간, 그라시엘라는 초자연에 가까운 매력을 가진 이 여인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계속해서 이곳을 방문했고, 촬영된 작품들은 작가의 페미니스트 활동을 엿볼 수 있는 전설적인 사진집 «여성들의 후치탄 Juchitán de las mujeres*»에 정리되어 수록되었다.
디올 하우스와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는 전 세계 여성 아티스트들의 작업과 재능을 찬미하고 조명하고자 하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열망을 관통하는 강렬한 스토리를 엮어냈다. 2017년 미국판 엘르(Elle) 매거진을 위하여, 이 멕시코 포토그래퍼는 디올 여성 컬렉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디자인한 2018 디올 크루즈 라인 룩들의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매력을 시적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이 인연은 시즌이 계속될수록 더욱더 풍성하게 이어졌다. 멕시코판 보그(Vogue) 매거진을 위하여, 그라시엘라 이투라비데는 멕시코의 쏟아지는 빗속에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발표한 2024 디올 크루즈 패션쇼 당시, 감동적인 피날레를 장식한 화이트 드레스들을 중심으로 한 포토 시리즈를 선보였다. 마치 선언처럼, 백색의 캔버스를 표현의 장으로 변신시킨 이 의상들은 엘리나 차우벳(Elina Chauvet)이 자신의 «신뢰 Confianza» 프로젝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한 퍼포먼스 속에서 한 번 더 빛을 발했다.
2025년 4월, 디올은 ‘HUMANITY’라는 테마로 공개되는 제13회 교토그라피 국제사진축제를 통해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가 걸어온 길과 그녀의 상징적인 작품에 경의를 표한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관광객들의 다채로운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마틴 파르의 사진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는 강렬하고 절대적인 흑백의 미학을 선사한다. 신념과 종교, 죽음 등 작가가 한결같이 다루어 온 주제들을 충실히 전하는 그 감각적인 사진들은 내면의 혁명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여성들의 우아함을 되살리도록 관람객들을 초대한다. | * «여성들의 후치탄, 1979~1989 Juchitán de las mujeres 1979-1989», RM 출판사, 201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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