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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즈 & 마리아 손펠트(LOUISE & MARIA THORNFELDT)

아마조네스 여전사처럼,
SAGG 나폴리

이탈리아 아티스트 SAGG 나폴리(SAGG Napoli)는 2025 봄-여름 디올 레디-투-웨어 패션쇼를 위해 특별히 구상한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을 통해 무대 위에서 직접 활을 쏘는 장면을 연출했다.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아티스트 포트레이트. 글: 보리스 베르그만(Boris Bergmann)

어스름한 미광 아래, 금속과 유리로 제작된 70m 길이의 구조물이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가장 먼저, 엄숙한 어조 속에 저항적인 의지가 깃든 «May the building of a strong mind and a strong body be the greatest work I have ever made.(강인한 정신과 육체를 기르는 일이 내 생애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되기를.)»라는 슬로건 같은 문장이 눈길을 끈다. 한 젊은 여성이 단어 사이를 헤치고 걸어 나와 구조물 내부에 자리 잡는다. 건강미가 돋보이는 조각 같은 실루엣의 그녀는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 천천히, 그리고 정교하고 정확하게, 그녀는 활시위를 당긴다. 관객들은 일제히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화살이 공간을 가로질러 반대편 끝, 과녁에 그려진 눈 그림에 날아가 꽂힌다. 궁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순간, 패션쇼의 막이 오른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2025 봄-여름 디올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위해 디자인한 위풍당당한 룩들 한가운데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는 이 여전사는 몽환적인 제스처의 안무를 따라 매번 과녁을 맞히며 자신의 퍼포먼스를 이어나간다.

이토록 특별한 무대를 구상하고 빛낸 여성은 자신을 ‘SAGG 나폴리’라고 소개한다. 이 신비로운 이니셜 뒤에는 1991년 나폴리에서 태어난 소피아 지네브라 지아니(Sofia Ginevra Giannì)라는 이름이 숨어 있다. 그녀에게 이 이탈리아 남부 도시는 예술적 표현의 출발점이자, 본거지이다. 베수비오산과 지중해 사이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민족, 사람들과 상상력이 서로 어우러지는 그곳. SAGG 나폴리는 그 지역이 가진 역사적, 지정학적 연결 고리에서 영감을 길어 올린다. 그녀는 다각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자신의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존재 방식과 언어, 급진주의적인 성격, 저항 정신, 폭력성, 그리고 시적 감성을 지닌 이 남부 유럽에 질문을 던진다.

Culture - Portrait - Sagg Nap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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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Portrait - Sagg Nap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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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린다 트리아나(Melinda Triana)

그 예로, 할머니 동네에 사는 젊은이들의 고공 묘기를 담은 비디오 아트, «You’re A Lie With Smooth Thighs and Painted Nails(매끈한 허벅지와 컬러풀한 손톱에 가려진 당신의 거짓말)»를 통해, 그녀는 나폴리 시민들이 비효율적인 대중교통으로 혼잡한 도시 공간을 어떻게 점령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 여성 신체의 표현 또한 그녀의 작업 곳곳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특히, 이탈리아 남부에서 크게 유행 중인 초고속 비트의 일렉트로닉 뮤직 타란타(Taranta)를 테마로 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음악의 이름은 타란툴라 거미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타란툴라에 물린 여성들이 히스테리에 걸리기 쉽다는 한 세기 전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SAGG 나폴리는 그동안 부인되어 온 여성들의 트라우마가 곤충에게 물린 상처부터 트렌디한 댄스까지, 대중문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형되고 진화하였는지를 폭로한다.

사회 참여적이며 여성 인권을 옹호하는 그녀는 영상 작업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손톱에서 머리카락, 의상, 몸의 굴곡과 근육에 이르기까지, SAGG 나폴리는 자신의 모든 신체 부위를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 적극 활용한다. 2020년부터 선수 수준의 양궁 훈련을 병행하고 있는 그녀는 양궁이야말로 신체에 대한 이해방식을 미학적으로 상징하는 스포츠이며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 또 다른 활력소라고 생각한다. SAGG 나폴리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를 매료하고 그녀에게 영감을 주는 강인한 여성성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마치 과녁을 정조준하듯, 그녀의 예술이 가진 영향력은 활의 강력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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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우라 시아코벨리(Laura Sciacov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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