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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메나 모르핀(XIMENA MORFÍN)

열린 마음으로

놀랍도록 섬세한 블러드 레드 자수 장식과 함께, 아티스트 엘리나 차우베트(ELINA CHAUVET)는 지난봄 멕시코에서 공개된 2024 디올 크루즈 패션쇼에 강렬한 존재감을남겼다. 프랑수아즈-마리 산투치(FRANÇOISE-MARIE SANTUCCI)가 전하는 아티스트포트레이트.

오랜 전통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멕시코는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에게 ‘마음의고향’ 같은 곳이 아닐까? 바로 이런 이유로 디올의 여성 컬렉션 아티스틱 디렉터는 페미니즘 예술과 사회참여 활동에 있어 상징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엘리나 차우베트에게 멕시코에서 공개된 2024 디올 크루즈 패션쇼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멕시코 북부,  정확히는 수많은 여성 학살 및 실종 사건이 자행된 비극의 도시로 알려진 시우다드 후아레스(Ciudad Juárez) 출신으로 건축을 전공한 엘리나 차우베트는 프리다 칼로에서 티나 모도티(Tina Modotti)까지, 세계적으로 아이코닉한 여성 창작자들을 배출한 자신의 고국이 자랑하는 다양한 예술에 매료되었다.

1959년에 태어난 그녀는 50살이 되어서야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거리, 광장, 인도 같은 공공장소에 강렬한 컬러의 레드 슈즈를 수백 켤레 배치한 그녀의 설치 작품«Zapatos Rojos(빨간 구두)»는 그 통렬한 단순함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여기에 사용된 컬러는 마치 핏빛처럼, 혹은 사랑과 생명의 색처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빨간 구두’들은 엘리나 차우베트에게 ‘열정’이라는 잘못된 명목으로 죽임을 당한 모든 여성을 기리는 방식이자, 나아가 배우자에게 살해당한 채 실종된 자신의 여동생을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한 개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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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딤브레 오디오비주얼(Urdimbre Audiovisual)

엘리나 차우베트는 나아가 라틴 아메리카, 스페인,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이 주홍 신발들을 전시함으로써, 모든 연령, 모든 계층, 모든 국가의 여성들의 존재감과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살렸다. 이 선언 같은 작품이 지닌 시각적인 힘은 대중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고, 의식을 일깨웠다. 고통과 슬픔 아래에는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 희망과 저항의 메시지가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나 차우베트는 2012년부터, 몇 해 전 잔인하게 살해당했던 이탈리아 아티스트 피파바카(Pippa Bacca)에 헌정하는 새로운 프로젝트 «Confianza(자신감)»을 발표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로마에서 이 놀랍고도 감동적인 전시를 보고 난 후 엘리나 차우베트에게 연락하여 자신의 컬렉션을 통해 그림, 사진, 조형 예술 및 행위 예술 등 모든 형태의 페미니즘 예술을 위한 표현의 장을 제공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고 이를 충실히 실현해 나갔다.

1588년 가톨릭 예수회가 세운 콜레히오 데 산 일데폰소(Colegio De San Ildefonso)의 아름다운 안뜰에서 공개된 2024 디올 크루즈 라인을 위하여, 엘리나 차우베트는 «A Corazón Abierto(열린 마음으로)»라는 타이틀의 특별한 작품을 구상했다. 패션쇼가 끝날 무렵, 스무 명의 모델들은 디올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정적 속에 등장했다. 그녀들의 가슴에는 여성 살해를 고발하고, 고통과 아픔뿐만 아니라 기쁨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단어들과 스케치들로 구성된 문구들이 붉은 실로 수 놓여 있었다. 마치 울부짖는 마음의 소리에 화답하여 하늘도 눈물을 흘리듯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 엘리나 차우베트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보기 드문 강렬함을 눈부시게 발산하는 감동의 순간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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